그 유명한 박쥐를 이제야 봤다.

곰TV 무료 영화로...


난 예술 영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숨겨진 상징이라던가 그런것 잘 못찾는다.


게다가 박쥐를 안본 이유는 하도 악평들이 많은데다 박찬욱 감독이 유명하다보니... '유명한 한국 영화 감독'의 영화는 불편한 경우가 많았기에 선뜻 보고 싶진 않았다.


'악평 많은 영화'

'평점 낮은 영화'

'한국 영화 거장이 만들었다는 영화'


이 세가지를 종합해보건데 아마도 무지 지루하고 재미없고 뭔 뜻인지도 알 수 없겠구나, 그런 선입감이 강했다. 한마디로 기대치가 전혀 없었다. 평은 안좋았어도 언제나 귀에 자주 맴도는 제목의 영화를 한번 봐야겠구나 하는 가벼운 생각, 마치 아이들과 말이 통하려면 개그콘서트를 봐야 하지 않나... 단테의 신곡을 전처럼 대충 보지 말고 한번 정독해야 하나... 그냥 상식을 쌓는다는 측면으로. 이정도 마음가짐이었나?


하지만 영화 본 뒤로는....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는지, 정말 정말 재밌게 봤다.

한국 영화에 한국 감독에, 투자와 기대때문에 대놓고 B급 영화필로 갈수 없다는 감독의 속떨림 때문이었는지, 왠지 더 나갈수 있는데 안나갔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었다. 박쥐가 아예 막장으로 나갔으면 더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보면 이런 분위기의 영화는 차라리 한국 영화가 아니라 아예 외국영화였으면 더 어울렸겠다 싶기도 했다.


송강호씨의 내면연기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태껏 내가 본 송강호씨 영화 중 가장 외모에 신경쓰지 않았나 싶다. ㅎㅎ 아무래도 매력적인 뱀파이어야 하니까. 허나... 차라리 원빈같은 조각미남이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송강호씨 연기력에 외모가 원빈이었다면 더 어울렸을 영화. 하지만 송강호씨도 '잘생겨보이는 연기'를 잘 하셨다! ㅎㅎㅎ 


본성에 자신을 맡기고 미쳐 날뛰는 여자아이 캐릭터는 뱀파이어 드라마에서 비슷한 아이를 본 기억이 있다. 아마 그 미드보다 박쥐가 더 먼저인것 같지만..., 송강호씨 캐릭터는 금욕주의 애니어그램 1번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사실 배우로서는 계속 같은 이미지를 쓰고 싶지 않겠지만, 보고 나서 미드의 모 배우가 모 배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캐릭터로 송강호 역을 연기했어도 무지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전형적이기도 한, 본인은 옳고 바르려고 애쓰는데 수시로 작은 세속의 유혹에 불쌍한 눈빛을 하는 귀여운 강아지같은 캐릭터... 말이 이상해지는데, 어쨌든 빈틈없이 이성적이고 옳으려는 사람이 자잘한 욕망들에 끌리다가 결국 넘어가고 ... 바나나 수입금지 풀렸을때의 한국처럼 미친듯이 바나나를 먹어대던 과도기, 즉 욕망을 억누르다가 서서히 실이 풀리면서 모든 것이 팍! 하고 그래프가 고점을 찍기 전... 송강호 신부님은 그만 최대의 브레이크를 거셨다. 자신이 창조해낸 '순수한 악마(아마 송강호 신부님은 이리 생각하신듯)'와 함께 자살을 선택하셨다. 


오히려 이해가 안간 것은 어린 여자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송강호 신부의 선택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다. 신부를 이해할만큼 생각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가 마침내 얻은 자유, 그 자유를 가져다 준 힘을 마음껏 누리는 것에 제동을 내내 걸던 그 고라티분한 신부를 그녀는 정말로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유와 힘을 가지고 누리는 그녀에게 신부는 이제 한갓 장애물에 불과하다. 계속 잔소리하고, 그녀의 자유를 막고 사사건건 앞을 가로막는다. 

뒤로 가면 아예 그녀를 죽을 곳으로 끌고가서 살려는 노력을 모두 좌절시킨다. 


그런데도 그녀는 귀여운 투정 정도로의 모습외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밑바닥까지 크게 분노하고 증오하지 않았다. 

자기를 죽이려는데! 그를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할수 없이 그녀를 구속하고 괴롭히는데! (신부의 고뇌를 안다면 마냥 괴롭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녀가 그 정도로 생각이 깊은 캐릭터로 보이진 않는다. 어린아이같다. 순수하지만 생각이 깊진 못하다. 깊어 보이더라도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각 정도?) 그녀는 잔인하면서도 순수한 것이 딱 어린아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데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정도를 보일 뿐 그냥 수용해버린다. 밑바닥까지 뿌리깊이 증오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배우의 역량이 딸려서 그런걸까 하는 의문은 일단 미뤄두겠다. 그정도면 연기 잘했으니까. (물론 곤충의 날개를 찢으며 그 고통스러운 버둥거림에 순수의 환희를 보내는 어린아이와 같은 잔인함을 더 마음껏 연기해서 표현해주었으면 나았겠지만 그정도 연기면 만족하다.)

새로태어난 그녀가 더 발전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하고 죽음을 완전히 거부하기 전에 송강호 뱀파이어 신부는 그녀를 꼭 껴안고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한다. 마치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는 듯이.


어떻게 보면 송강호 신부도 어린 여자와 같이 미숙하다고 볼 수 있고 그런 미숙한 면이 매우 귀엽게 느껴진다. (여자나 송강호 신부님이나 매우 귀여운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1번 유형에 그런식의 서툰 귀여움은 미드에서 본 기억이.... 그래서 더 외국 배우가 아예 외국 배경으로 B급티 나게 팍팍 찍었으면 더 속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그러면 전형적인 영화 중 하나가 되었으려나.


어쨌든 재밌었다. 내가 능력이 되면 외국 배경에 외국 배우가 찍은 것처럼 만화로 재구성해보고 싶은데 그럴 실력도 시간도 안된다. 


어찌 보면 두 명의 서툰 (하지만 귀여운) 남녀의 귀여운 (하지만 살벌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둘 다 아이같아서 진짜 깊은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도 풋내 나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에 깊이의 잣대를 대는 것은 재미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 그 캐릭터들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해(혹은 빠져나갈수 없는 터널같은 환경 속에서) 빠져나오고 변형되고 비틀어져 나오면서 내면의 심리가 변해가는 모양이 - 참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살벌했다. 하지만 더 살벌할수도 있었는데 ... 싶다. 잔인한 장면을 안좋아하지만 이 영화의 이 캐릭터들에게는 필요했을듯.)


하여간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캐릭터들이 너무 귀여워서... ^^



Posted by 리오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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