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씨의 책은 여행기때부터 봤다. 이번에 신간이 나왔길래 사서 보았다.
이 세상에 훌륭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은 참 많다. (지나치게 많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며,
자신이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귀하다.
내가 한비야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별거 아닌 1년 중국유학 겉멋들어 포장해서 돈 벌었느니, 잘난 척 한다느니...
사실 칭찬 코멘트들이 더 많지만, 유독 그런 코멘트가 눈에 띄고 화(! 당사자도 아니면서)가 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면 건방져보이겠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돈만 많으면 누구나 책 쓸수 있다. 물론 어느 출판사에서 냈느냐 자비출판이냐 많이 팔렸나 좋은 평을 들었나 다 따지면 할말없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 자체는 그리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대단한것이 아니다. 쓴 사람이 스스로 돈 많으면 출판사에 돈내서 자비출판 하거나, 그게 싫으면 자기가 출판사 차려서(출판사 차리는거 쉽다더라. 부부 두명이 직원없이 딸랑 출판사 이름걸고 출판하는것도 봤다) 내면 되고, 잘 팔릴거 같으면 괴발새발 통신체 인터넷 소설도 출판해주는 출판사 많다.
'이깟 내용으로' 책을 냈다는 것에 화내는 사람, '이깟 내용으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잘난척한다고 하는 사람... 전자를 보면 왜 이 책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후자를 보면, 심지어 책을 안읽고 그런 리플 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루에 영어 단어 열단어씩 외우면 평생 엄청난 단어를 외우겠지.(한자도 마찬가지)
별거 아니다. 다 안다. 하지만 누가 제대로 실천할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7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 열단어 외운 경험을 책으로 써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흘정도 빠졌더라도 애교로 봐줄수 있다)
한비야의 책을 보면 숨이 가쁘다. 스스로도 목소리 톤이 높고 말이 빠르다고 책속에서 썼다. 모든 문장이 그렇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에너지나 톤은 끓어오른다.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들뜨고 무언가 지금 당장 하나라도 무엇이든 시작해야 할것 같고, 왠지 하면 될것 같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과연 대단한 문장 때문일까? 멋지고 치밀한 구성과 계산에 의한 것일까? 일개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건데 그건 아니다. (한비야씨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글쓸때 밤 새며 고민한다는데)
서두에도 말했지만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은 걸어갈때마다 발에 밟히게 많다.' 그런데 유독 한비야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어 많은 사람들을(모든 사람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내 블로그고 내 경험만 말할수 있으니까 내 기준으로 말하겠다. 나는 누군가 훌륭한 말을 할때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사람의 내면을 잠시나마 보고 '정말 그 말을 알고 하는지' 살핀다. 사랑하라.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어느 수준까지 알고 말하는가? 살펴보면 책이나 방송보고 앵무새처럼 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지만 깊이는 어느정도 느낄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사랑'의 깊이는 종류가 다르더라도 어느정도냐? 이렇게 살펴보면 대부분은 야트막하기 그지 없다. (잘난척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나도 그렇다는거 나도 안다.)
이런 내 버릇은 책을 읽을때도 마찬가지다. 행간의 의미란 말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글의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뜻이 더 큰 경우가 많다 - 내 경우 대부분이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말이 쓰였어도 자신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모르는 사람의 글은 참으로 안좋아한다. (어렸을때는 무려 경멸까지 했지만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다. 앵무새더라도 좋은 말 하는 앵무새가 안좋은 말 내뿜는 진정한 고수보다 낫다)
그런 증상이 예민할때는, 딱 한번이었는데, 글의 원 저자와 번역자의 냄새(나는 그걸 냄새라고 표현한다)가 극명하게 다른것을 느낀적도 있다. 글의 원 저자는 참으로 맑은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는데, 번역자는 그것을 자신의 이익(돈 말고도 정신적 이익이란게 있다)을 위해 왜곡하고 있었다. 그것이 악취로까지 느껴졌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유해진 뒤에는 그렇게까지 날카로운 느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금도 글을 읽으면 '작가가 이 말을 스스로 알고 하는가'라는 '촉'은 아직도 살아있다.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다만;
말이 길어졌다. 그래도 할말은 결국 그거다. 한비야씨는 그런 내 '촉'에 긍정적으로 - 아니 감동으로 다가온 작가이다. 한비야씨의 글은 한비야씨의 삶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삶이다. 말로 그렇게 살라는 글은 많이 봤지만 실제 그렇게 산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드물다. 내가 그런 사람만 찾아다니며 전세계를 여행할것이 아니면 말이다.
그렇다고 한비야씨 개인에 대한 숭배는 없다. 당신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인데 당신은 내가 못한것을 하는 구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은 있다. '한비야씨와 실제 만나면 나를 안좋아할것 같아'라는 생각은 든다. ^-^ 그런 이유는 내가 게으른 고로... 난 비빔국수도 안좋아하고 기독교의(개신교+천주교+성공회 등등 다 합쳐서) 독선적 교리를 안좋아하는 사람이고, (솔직히 이슬람도 그쪽 계통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부지런하게 발굴하여 갈고 닦지도 않고, 여행도 항상 핑계대며 집에만 앉아있는, 한비야씨가 좋아할만한 구석은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비관적이고 게으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비야씨의 책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까닭은, 자신이 아는 대로 진실하게 말하고 (인간에게 백프로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하려는 마음만 있어도 난 그것이 진실하다고 친다.), 실천하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을 결실로 이루어 낸다는 것. 아, 솔직히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의 책이 재미없거나 내게 감흥을 안준다면 굳이 돈주고 사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비야씨의 책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따듯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 한비야씨는 참 겸손하다. 한비야씨의 여행기를 처음 접했을 시절에, 나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다. 저기 못사는 나라 촌구석탱이에 사는 꼬질꼬질한 할머니 사진을 지구촌 뉴스에 보거나, 길가다 못사는 동남아 사람 보면, 머리로는 '저 사람들은 나와 평등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아주 차고 넘치도록 잘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낮춰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책, 방송, 사람들의 태도... 대놓고 그 꾀죄죄한 사람들을 보며 깔보는 말을 내뱉는 사람은 적어도(없는건 아니다), 느껴진다. 책의 행간이 느껴지듯 느껴진다. 기본적인 시선의 온도가... 그 높고 낮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가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남아나 다른 못사는 나라보다 잘사는 국민의 입장으로, 더 낫게 사는(내 기준이겠지만) 사람의 입장으로 깔아 내려보는 시선. 가슴은 이론으로 설득하기 참 힘들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바로 머리와 일치되게 바꾸어준것이 한비야씨의 글이다. 한비야씨는 '차별하지마!'라고 강하게 주장한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런 내 마음을 바꾸어준 것은 한비야씨의 태도다. 한비야씨는 진정으로, 그런 못사는 나라의, 동물들과 득실거리는 이와 함께 사는 오지의 할머니도,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했다. 그게 말 뿐이었으면 금새 느꼈을 것이다. 그때만해도 내 '촉'이 좀 예민할때라서 왠만하면 가려냈으니까. 하지만 말뿐인 글이 아니었다.
한비야씨가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한비야씨는 평등한 눈을 가진 가슴 따듯한 사람이다. 그것이 행간에서 느껴졌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그것도 가슴따듯한 사람을 보면, 그 행동만으로도 전혀 상관없는 타인인 내가 변한다.
이번 신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을 사면서 처음엔 좀 망설였다. 얼핏 듣기로 월드비전을 그만 둔다는데, 혹시나 그녀의 열정이 좌절하여 한탄을 늘어놓은 에세이가 아닐까. 아니면 실제 마음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거나 변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리고 인기가 높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자신을 꾸며내려고 했으면 어쩌나. 그것이 버터칠된 문장의 행간에 악취로 느껴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된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마음은 상쾌하다. 아니, 내 마음도 울렁거리며 잠시 끓었다.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밝고 따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하나 더 추가한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동사무소의 스물 남짓 돈내고 운동배우는 곳 같은 별거 아닌 곳에서도, 권력관계가 생기고 권력을 잡은 자들이 얼마나 추태를 부리는지. 그 조그만 곳에서 얻은 소위 '힘'을 어떻게 남용하고 얼마나 턱이 높아지는지. 인터넷의 조그만 사이트 내에서도, 소위 '힘'을 얻은 자들이 얼마나 교만해지는지. 그릇이 작은 인간일수록 '힘'이 주어졌을때 교만으로 추해진다. 스스로들은 그게 추한지조차 모르고 '나같은 대단한 인간에게 너같이 별거 아닌 놈이 깝치는구나'라고 심지어 응징하려는 이까지 생기지만. 진정으로 내면이 성숙한 사람은 왕이 되어도 겸손할수 있다. 겉치장을 위한 겸손은 또한 교만의 한 종류이지만, 진정한 겸손은 (자기 비하가 절대 아님) 내면의 깊이를 나타낸다.
한비야씨를 숭배하진 않는다. 한비야씨의 문장이 엄청난 명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번것은 제목도 좀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보이는 것 아래쪽 행간에 더 큰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한 삶이다. (->낯간지러운 문장이지만 다른 표현을 못찾겠다.)
이 세상에 훌륭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은 참 많다. (지나치게 많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며,
자신이 아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귀하다.
내가 한비야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별거 아닌 1년 중국유학 겉멋들어 포장해서 돈 벌었느니, 잘난 척 한다느니...
사실 칭찬 코멘트들이 더 많지만, 유독 그런 코멘트가 눈에 띄고 화(! 당사자도 아니면서)가 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면 건방져보이겠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돈만 많으면 누구나 책 쓸수 있다. 물론 어느 출판사에서 냈느냐 자비출판이냐 많이 팔렸나 좋은 평을 들었나 다 따지면 할말없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 자체는 그리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대단한것이 아니다. 쓴 사람이 스스로 돈 많으면 출판사에 돈내서 자비출판 하거나, 그게 싫으면 자기가 출판사 차려서(출판사 차리는거 쉽다더라. 부부 두명이 직원없이 딸랑 출판사 이름걸고 출판하는것도 봤다) 내면 되고, 잘 팔릴거 같으면 괴발새발 통신체 인터넷 소설도 출판해주는 출판사 많다.
'이깟 내용으로' 책을 냈다는 것에 화내는 사람, '이깟 내용으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잘난척한다고 하는 사람... 전자를 보면 왜 이 책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후자를 보면, 심지어 책을 안읽고 그런 리플 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루에 영어 단어 열단어씩 외우면 평생 엄청난 단어를 외우겠지.(한자도 마찬가지)
별거 아니다. 다 안다. 하지만 누가 제대로 실천할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7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 열단어 외운 경험을 책으로 써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흘정도 빠졌더라도 애교로 봐줄수 있다)
한비야의 책을 보면 숨이 가쁘다. 스스로도 목소리 톤이 높고 말이 빠르다고 책속에서 썼다. 모든 문장이 그렇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에너지나 톤은 끓어오른다.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들뜨고 무언가 지금 당장 하나라도 무엇이든 시작해야 할것 같고, 왠지 하면 될것 같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과연 대단한 문장 때문일까? 멋지고 치밀한 구성과 계산에 의한 것일까? 일개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건데 그건 아니다. (한비야씨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글쓸때 밤 새며 고민한다는데)
서두에도 말했지만 '훌륭한 말을 하는 사람은 걸어갈때마다 발에 밟히게 많다.' 그런데 유독 한비야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어 많은 사람들을(모든 사람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내 블로그고 내 경험만 말할수 있으니까 내 기준으로 말하겠다. 나는 누군가 훌륭한 말을 할때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사람의 내면을 잠시나마 보고 '정말 그 말을 알고 하는지' 살핀다. 사랑하라.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어느 수준까지 알고 말하는가? 살펴보면 책이나 방송보고 앵무새처럼 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지만 깊이는 어느정도 느낄수 있다. 네가 생각하는 '사랑'의 깊이는 종류가 다르더라도 어느정도냐? 이렇게 살펴보면 대부분은 야트막하기 그지 없다. (잘난척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나도 그렇다는거 나도 안다.)
이런 내 버릇은 책을 읽을때도 마찬가지다. 행간의 의미란 말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글의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뜻이 더 큰 경우가 많다 - 내 경우 대부분이다. 나는 아무리 훌륭한 말이 쓰였어도 자신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모르는 사람의 글은 참으로 안좋아한다. (어렸을때는 무려 경멸까지 했지만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다. 앵무새더라도 좋은 말 하는 앵무새가 안좋은 말 내뿜는 진정한 고수보다 낫다)
그런 증상이 예민할때는, 딱 한번이었는데, 글의 원 저자와 번역자의 냄새(나는 그걸 냄새라고 표현한다)가 극명하게 다른것을 느낀적도 있다. 글의 원 저자는 참으로 맑은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는데, 번역자는 그것을 자신의 이익(돈 말고도 정신적 이익이란게 있다)을 위해 왜곡하고 있었다. 그것이 악취로까지 느껴졌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유해진 뒤에는 그렇게까지 날카로운 느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금도 글을 읽으면 '작가가 이 말을 스스로 알고 하는가'라는 '촉'은 아직도 살아있다.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다만;
말이 길어졌다. 그래도 할말은 결국 그거다. 한비야씨는 그런 내 '촉'에 긍정적으로 - 아니 감동으로 다가온 작가이다. 한비야씨의 글은 한비야씨의 삶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삶이다. 말로 그렇게 살라는 글은 많이 봤지만 실제 그렇게 산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드물다. 내가 그런 사람만 찾아다니며 전세계를 여행할것이 아니면 말이다.
그렇다고 한비야씨 개인에 대한 숭배는 없다. 당신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인데 당신은 내가 못한것을 하는 구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이런 마음은 있다. '한비야씨와 실제 만나면 나를 안좋아할것 같아'라는 생각은 든다. ^-^ 그런 이유는 내가 게으른 고로... 난 비빔국수도 안좋아하고 기독교의(개신교+천주교+성공회 등등 다 합쳐서) 독선적 교리를 안좋아하는 사람이고, (솔직히 이슬람도 그쪽 계통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부지런하게 발굴하여 갈고 닦지도 않고, 여행도 항상 핑계대며 집에만 앉아있는, 한비야씨가 좋아할만한 구석은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비관적이고 게으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비야씨의 책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까닭은, 자신이 아는 대로 진실하게 말하고 (인간에게 백프로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하려는 마음만 있어도 난 그것이 진실하다고 친다.), 실천하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을 결실로 이루어 낸다는 것. 아, 솔직히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의 책이 재미없거나 내게 감흥을 안준다면 굳이 돈주고 사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비야씨의 책을 좋아하고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따듯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사람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 한비야씨는 참 겸손하다. 한비야씨의 여행기를 처음 접했을 시절에, 나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다. 저기 못사는 나라 촌구석탱이에 사는 꼬질꼬질한 할머니 사진을 지구촌 뉴스에 보거나, 길가다 못사는 동남아 사람 보면, 머리로는 '저 사람들은 나와 평등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아주 차고 넘치도록 잘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낮춰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책, 방송, 사람들의 태도... 대놓고 그 꾀죄죄한 사람들을 보며 깔보는 말을 내뱉는 사람은 적어도(없는건 아니다), 느껴진다. 책의 행간이 느껴지듯 느껴진다. 기본적인 시선의 온도가... 그 높고 낮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가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남아나 다른 못사는 나라보다 잘사는 국민의 입장으로, 더 낫게 사는(내 기준이겠지만) 사람의 입장으로 깔아 내려보는 시선. 가슴은 이론으로 설득하기 참 힘들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바로 머리와 일치되게 바꾸어준것이 한비야씨의 글이다. 한비야씨는 '차별하지마!'라고 강하게 주장한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런 내 마음을 바꾸어준 것은 한비야씨의 태도다. 한비야씨는 진정으로, 그런 못사는 나라의, 동물들과 득실거리는 이와 함께 사는 오지의 할머니도,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했다. 그게 말 뿐이었으면 금새 느꼈을 것이다. 그때만해도 내 '촉'이 좀 예민할때라서 왠만하면 가려냈으니까. 하지만 말뿐인 글이 아니었다.
한비야씨가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한비야씨는 평등한 눈을 가진 가슴 따듯한 사람이다. 그것이 행간에서 느껴졌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그것도 가슴따듯한 사람을 보면, 그 행동만으로도 전혀 상관없는 타인인 내가 변한다.
이번 신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을 사면서 처음엔 좀 망설였다. 얼핏 듣기로 월드비전을 그만 둔다는데, 혹시나 그녀의 열정이 좌절하여 한탄을 늘어놓은 에세이가 아닐까. 아니면 실제 마음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거나 변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그리고 인기가 높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자신을 꾸며내려고 했으면 어쩌나. 그것이 버터칠된 문장의 행간에 악취로 느껴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된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마음은 상쾌하다. 아니, 내 마음도 울렁거리며 잠시 끓었다. 여전히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밝고 따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하나 더 추가한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동사무소의 스물 남짓 돈내고 운동배우는 곳 같은 별거 아닌 곳에서도, 권력관계가 생기고 권력을 잡은 자들이 얼마나 추태를 부리는지. 그 조그만 곳에서 얻은 소위 '힘'을 어떻게 남용하고 얼마나 턱이 높아지는지. 인터넷의 조그만 사이트 내에서도, 소위 '힘'을 얻은 자들이 얼마나 교만해지는지. 그릇이 작은 인간일수록 '힘'이 주어졌을때 교만으로 추해진다. 스스로들은 그게 추한지조차 모르고 '나같은 대단한 인간에게 너같이 별거 아닌 놈이 깝치는구나'라고 심지어 응징하려는 이까지 생기지만. 진정으로 내면이 성숙한 사람은 왕이 되어도 겸손할수 있다. 겉치장을 위한 겸손은 또한 교만의 한 종류이지만, 진정한 겸손은 (자기 비하가 절대 아님) 내면의 깊이를 나타낸다.
한비야씨를 숭배하진 않는다. 한비야씨의 문장이 엄청난 명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번것은 제목도 좀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보이는 것 아래쪽 행간에 더 큰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한 삶이다. (->낯간지러운 문장이지만 다른 표현을 못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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